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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평범한 일상

혈액암 항암치료 식사 간호 일기

엄마가 피검사 후 다음날 바로 혈액암 판정받으며 병원에 들어가서 바로 입원했고, 판정 다음날부터 일주일간 항암 치료에 들어갔다. (여기는 미국으로 K로 시작하는 큰 병원)

항암치료 첫 3일은 항암주사 하루에 두번, 그리고 이틀은 하루에 한번 주사를 맞았다. 들은바로는 주사맞은 후에 여러 증세가 보였는데, 미식거림, 입맛이 전혀 딴판이 되어서 밥 먹기가 괴로움, 어지러움, 속 가스참, 설사 등등이었다. 머리는 곧 빠지기 시작하겠지만 항암치료 끝나고 3일째인 오늘은 티가 안나는 듯하다.

코로나 때문에 딱 한명 면회 잠깐 시켜주고.. 끝
4주 입원 예정이었는데 딱 한명 그것도 잠깐동안 엄마를 볼 수 있었던..;
엄마는 한국 간호사 한명 그리고 전화로 통역해주는 서비스를 통해 의료용어라던지 몸상태에 대한 설명은 매일 의사가 회진돌때 잘 듣고 있는 듯 했다.
아이패드, 핸드폰, 성경책, 읽을 책 등등 갖고 간 엄마
2주가 지나보니 지금 엄마에게 닥친건 외로움이 아닐까 싶었다.. 걱정.... 자식들이 옆에서 간호도 할 수 없고 (코로나때문 외부인 절대 금지) 머리감고 씻는 것 조차 혼자 할 수 없기에.. 간호사를 불러 해달라고 해야함..(정맥 주사튜브를 손목에 달고 있음)

지금 가족들 각자 맡은 역할을 아주 충실히 해내고 있는데 내 역할은 식사준비다.
엄마가 원래 평소에 적당히 일반 성인 1인분을 드시던분이고 요리를 아주 잘하시기에 먹고 싶은 건 뚝딱 잘 해드셨었다. (나는 소식가.... 더 먹고 싶어도 위장이 거부하는...)
그런 사람이 알던맛(?)에 배신을 당하는... 항암 주사 기간에 입맛이 횃가닥 돌아버린 상황이 오니 혼란, 분노, 두려움 느낀듯 하다. 어떻게든 잘 먹고 쉬면서 회복해야하는데 못 먹으면 회복이 더딜까 우려되서 본인 스스로가 많이 힘들었던 것 같다. 미국식으로는 한끼도 못먹고 죽을것 같다고 해서 의사 허락 하에 집밥을 보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동생이 알려주는 대로 주문해놓은 투고식당에 가서 국 여러개 구매해서 전자렌지에 사용가능한 일회용 플라스틱 용기에 나눠 담았다. 햇반과 수저세트는 필수. 반찬은 근처 한인마켓에서 사서 한끼당 한팩으로 조금씩 변형을 주며 6끼정도 만들었다. 비닐봉지 하나에 수저세트1, 햇반 1, 반찬 4종류 담은 1팩, 국 1팩, 과일주스 1개 담았다.
비닐봉지 6개 = 6 끼니
봉지 하나당 먹을 날짜, 요일, 병실 넘버, 환자이름을 자그마한 종이에 써서 테이프로 붙여놓았다.
간호사들이 통째로 냉장고에 넣어놓고 한끼씩 꺼내 보여주고 필요한 것들은 전자렌지에 뎁혀줘야하기에 전자렌지에 데워야 하는 것들은 용기 뚜껑에 펜으로 일일히 다 써놓았다.

이렇게 식당음식들을 싸서 엄마께 보냈는데 이틀 후에 엄마가 연락해서 식당음식 도저히 못 먹겠다고 꼬리곰탕을 끓여서 기름 다~ 제거해서 보내라고 하셨다. 그 이유는 내가 모르고 육계장을 보냈는데 갑자기 매운 걸 먹어서 그런지 탈나서 엄청 고생하심.... 그 뒤로는 맑은 국만 하고 있다.
어쨌든 꼬리 사서 끓여서 6끼 정도 해서 보냈는데 다음날 느글느글해서 못 먹겠다고..... 내가 손수 한 반찬들에 손도 안간다고 미안해했다.
이 때 내가 느낀건 엄마가 정신적으로 굉장히 불안한듯했다. 뭘 먹어도 상상했던 그 맛이 아니고, 물없이는 밥도 안 먹히고, 이대로 가다가는 호전되지 않을 것이라는 불안감과 스스로에 대한 답답함이 있었던 듯 하다. 거기다가 계속 설사까지 하니 뭘먹어도 안되는구나 라는 생각도 들듯했다.

가까운데에 사실 가족이 사시는데 얼마전 암치료를 하셨어서 엄마가 음식을 부탁하셨다. 여러가지 풍족하게 잘 해주셔서 나는 담아서 가기만 했다. 엄마가 이런저런 땡기는 것들과 이미 항암을 하셨으니 공감하실거라고 생각하며 안겪어본 내 음식보다는 낫겠지 싶어서 다행이었다. 그런데 이 때도 사실 엄마 입맛이 아직 제대로 돌아오지 않은 상태라 먹고 싶은 걸 가족분이 다 해줬는데도 자극적이어서 못 먹는 게 많았던 듯 싶다. (새콤하고 칼칼한 것들...;)

엄마는 그 뒤 내게 바로 전화해서 시금치 된장국, 소고기 뭇국등 이야기했고 시키는대로 만들어서 병원에 보냈다. 항암 치료 끝나고 입맛이 돌아오면서 엄마는 드디어 마음의 안정이 찾아온 듯 했다. 매끼 과일도 조금씩 싸서 보내라고 했고, 스무디 작은거 하나씩 넣기 시작했다. 엄마의 예민하고 날카롭던 말투도 조금씩 부드러워졌다.

매일 매일 먹고 싶은 게 새롭게 생각나는듯 오늘은 깐풍기나 양념치킨을 내게 이야기했고, 나는 깐풍기, 양념치킨, 새우마요 를 특별반찬으로 만들어 싸보냈다.
하루하루 다르게 해주는게 제일 좋을 것 같아서 여러가지 하느라 힘은 들지만 그래도 보람있다. 옆에서 든든하게 애보고 운전하고 장보는 남편이 있어서 참 감사하다.

의사와 간호사들만 만나며 복도로 나가는 것도 조심스러워 일인실 안에서만 빙글빙글 돌며 운동하는 수밖에 없는 엄마가 감옥살이 하는 것 같아 마음이 짠하지만 남은 기간 잘 버텨내기만을 바랄뿐이다.

의료서비스의 질도 좋고 케어도 잘 받아서 그런 면에서 걱정은 없지만, 자식 남편 얼굴 제대로 못 보며 영어 대화 속에서 혼자 버텨내는 게 쉽지 않을 것 같다. 뜬금없지만 향수병이 걸릴 수도 있겠다라고 상상이 드는데.... 밥이라도 먹고 싶은 거 잘 먹으면서 답답함이 좀 가셨으면 좋겠다. 그래서 매일 매 끼니 똑같지 않게 여러가지 해서 조합하는 이유다. 식사 시간마다 살기 위해 먹는다는 마음보다는 기대와 즐거움이 있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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